백수와 만화가게방 아가씨 (6탄)
♂ 백수 ♂
들어서자 마자 흠칫 놀랐다.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빗자루로 만화방 바닥을 쓸구 있었다.
왜 그녀가 여기 있지..?
결혼식이 내일인가..?
그래도 오늘은 엄청 바쁠텐데..
결혼식이 어제였나?
어제라면 신혼여행을 갔어야지..
하여간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그토록 그리워한 여인이었기에..
결혼식이 파토났나? 연기되었나.?
뭔가 분한게 있는지 나를 째려봤다.
내가 뭘 어쨌다고..
만화방 바닥에 먼지가 많았나보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걸 보았다.
눈을 불어주고 싶었지만 들고있는 빗자루가 맞으면 상당히 아플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참았다.
그렇게 아무말도 못하고 한참 있다가 용기를 내어 한마디했다.
"결혼식 연기됐어요? 아줌마.."
♀ 만화방 아가씨 ♀
이자식이 여전히 아줌마라고 그런다.
결혼은 또 무슨말이냐..?
혹시 그때 내가 결혼한다고 말한걸 진짜로 믿은거 아냐?
진짜 바보다.
어떻게 선보고 그날 바로 날을 잡을수 있나?
이런 바보 녀석이 아직 존재하다니..
그러니 백수로 지내고 있지..
누가 결혼한다고 그랬냐며 엄청 쪽을 주었다.
♂ 백수 ♂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기뻤다.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빗자루를 들고있다.
내일부터 또 만화방에 줄기차게 나와야겠다.
너무 기쁜 나머지 "아줌마 내일봐요."하고 인사도 하고 나왔다.
♀ 만화방 아가씨 ♀
그녀석이 끝까지 아줌마라고 놀리고 나갔다.
하지만 내일부터 그가 다시 나올 것 같다.............ㅋㅋㅋ
♂ 백수 ♂
만화방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날짜가 있는 걸 보았다.
무슨 날일까?
아마 한달에 한 번 정도 그 삭막한 아저씨가 오는 그날인가보다.
무슨 날인가 .......? (음흉한 웃음)
조심해야겠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긴 해도 그녀의 성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스통 같은걸 안다.
그런 날 잘못 걸리면 뭔가 날라올것 같은 으시시한 생각이 들었다.
♀ 만화방 아가씨 ♀
며칠있으면 내 생일이다.
이젠 내 생일날을 축하해줄 사람도 별루 없다.
슬프다.
달력에다 동그라미를 쳐놓고 나를 달래보았다.
혹 그 백수가 이 표시를 보고 내 생일이란걸 눈치챌 수 있을까?
괜한 기대는 하지말자. ㅠㅠ
그 녀석은 인간의 탈을 쓴....
바보다.
저거봐, 가스통에 맞은것처럼 으시시 떨고 있잖아..
♂ 백수 ♂
그녀를 보러 만화방으로 갔다.
오늘은 이름과 나이를 꼭 알아야겠다.
"에. 아줌마 ,,, 아줌마 노처녀 맞죠?"
얼떨결에 이렇게 말해버렸다..
♀ 만화방 아가씨 ♀
이 백수녀석이 아줌마도 모자라서 이제는 노처녀라고 놀린다.
열받아서
"25살도 노처녀야?"
라고 따졌다.
♂ 백수 ♂
25살?
생각보다 훨씬 어리네..
그럼 나하고 3살차이니까..
음..
딱 좋네.. ㅎㅎ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인다.
♀ 만화방 아가씨 ♀
그녀석이 내가 만으로 25살인걸 눈치챈것 같은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27살이라고 솔직히 말해 버릴걸 그랬나?
저 녀석 나이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쪽은 몇살먹은 백순데요?"라고 물었다..
♂ 백수 ♂
역시 그때 내가 백수라고 한걸 들었구나..
내 나이를 물어 보길래 28살이나 되어가지고 아직 백수냐고 그럴까봐 26살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 만화방 아가씨 ♀
연하도 괜찮을까..?...
어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저 녀석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다음에 기회봐서 말을 놓아야 겠다.
♂ 백수 ♂
만화방에 오늘은 좀 늦게 갔다.
안에는 그 삭막하게 생긴 그녀 삼촌이 있었다.
그래서 만화책만 뒤적이다 그냥 집으로 갔다.
가다가 생각하니 오늘이 '그날'이다.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그날...
조심해야겠다.
그러고보니 내가 지금껏 그녀를 좋아만했지 뭐하나 준게 없다.
편지도 한번 안보냈으니..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만원짜리가 하나 있다.
그러면 뭘 사다줄까..?
아무래도 먹는게 남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순대 족발 통닭 닭똥집.....비암..
아무리 떠올려도 그녀가 좋아할 만한게 없다.
근처에 제과점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저기 가면 뭔 가 살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케익을 샀다.
졸라 비쌌다.
만원으론 거기있는 것중에 제일 작은거 밖에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장을 해놓으니 순대나 족발 싸놓은거 보다는 있어보인다.
아직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나보다.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구 있다.
저 자린 아마 졸리게 만드는 무슨 마법이 걸려있는거 같다.
그 아저씨한테 케익을 주며 어떤 멋있는 단골이 줬다라고만 말하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의심이 갔다.
그래서 한마디 더했다.
“이거 먹지 마세요.."
그래도 그 아저씨가 왠지 그녈 안주고 먹어버릴것 같은 불안감이 자꾸 들었다.
♀ 만화방 아가씨 ♀
오늘 내 생일이다.
아빠 엄마한테서 연락 온거 말고는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며 전화해준 사람이 없다.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 친구를 만나 술이나 한잔하구 자축해야겠다 생각하던차에 삼촌이오셨다.
오늘 내 생일이신걸 아셨나부다.
만화방 봐줄테니 오늘 하루라도 맘껏 놀다 오라 그러신다.
겉모습과 달리 마음이 참 상냥하신 울 삼촌...
저녁에 돌아오니 삼촌이 좀 덜 떨어진 놈이 전해달라고 했다며 케익을 주셨다.
누굴까..?
좀 덜 떨어진 놈이라니..
혹시 그 백수..?
그런거 같다.
근데 그에게 그럴만한 센스가 있을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님 날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있나.?
아무래도 나 오래 못살거 같다.
내 미모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안되나 보다. 흑흑.. 미인박명...
근데 혹시 그 백수녀석이 주었다면..?
감히 연하 백수 주제에..
근데 나 이거 그가 선물한 것이었면 좋겠당~
♂ 백수 ♂
그 케익은 잘 먹었을까..?
♀ 만화방 아가씨 ♀
조금이라도 기대를 했던 내 자신이 좀 한심스럽다.
오늘 그 백수가 들어올 때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만화책 몇권을 뽑아와서는 경색된 얼굴로
"이거 빌려가겠습니다."
라고 그랬다.
그러고보니 책을 빌려가는건 오늘이 처음인거 같다.
좀... 아쉽다.
하지만 이 녀석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아낼 절호의 찬스다.
나보다 한살 어린걸 알고 있는터라 버릇처럼 반말이 나왔다.
"이름이 뭐야..? 주소하구 전화번호 불러봐요.."
♂ 백수 ♂
뭐야?..
지금 나한테 반말을 한건가?
한 살 정도 많은 놈 한텐 자연스레 반말이 나온다..?
옛날에 잘 나갔던 여자같다.
그래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내 맘은 변함이 없다.
♀ 만화방 아가씨 ♀
이름이 배준용이구 전화번호는.. 758-****
흠..
심심할 때 장난전화나 걸어봐야겠다. ㅎㅎㅎ
♂ 백수 ♂
우쒸..
내 이름만 가르쳐주고 그녀 이름을 못 물어봤다.
만화책 안갖다 주면 울 집에 전화가 오겠지? 그때 기회를 잡자..
♀ 만화방 아가씨 ♀
만화방 안에 손님은 많은데 그녀석이 없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근데 그 녀석 전화받는 태도는 고쳐야겠다.
나보고 사오정 귀파는 소리하지말고 썩 꺼져라고 그랬다.
나쁜놈..
♂ 백수 ♂
만화책을 사흘동안이나 안 갖다 주었는데도 그녀한테서 전화가 없다.
요 며칠동안 어떤 이상한 년이 자꾸 장난전화를 했다. 동물원이냐?
사자한테 밥은 줬냐..?
심지어 아우웅 아우웅 별
개같은 소리까지 내었다.
그렇지만 난 좋은말로 타일러 이런짓 하지 말라고 했다.
그녀가 몹시 보고싶다.
♂ 백수 ♂
그녀에게서 오늘도 전화가 안 올것 같다.
그래서 아침 일찍 만화책을 들고 만화방으로 향했다.
설렌다.
오랜만에 그녀의 모습을 본다는 기대에 만화책을 들고 하늘을 날듯이 뛰어갔다.
♀ 만화방 아가씨 ♀
오늘도 그녀석이 안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화장을 하고 아침일찍 그 녀석 집에 전화를 걸려고 하던 차에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만화방으로 들이닥쳤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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