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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자유글)

꿈꾸는 자만이 역사를 바꾼다

by 서울나그네 201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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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만이 역사를 바꾼다”
 그는 미국 켄터키주의 작은 오두막에서 태어났다. 워낙 가난했으므로 초등학교조차 다 끝마칠 수 없었다.
그는 열등감이 심한 소년으로 자랐다.
보통 소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때로는 책 한권을 빌리기 위해 기꺼이 수킬로미터를 걸어가기도 했다.
9세때 어머니를 잃었으며, 아버지는 먹고 살길을 찾아 농사를 짓기도 했고 선원일을 하기도 했다. 생활은 그래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직접 잡화점을 내기도 했으나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지고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빚을 갚는데만 무려 15년이 걸렸다. 그사이 다른 사업을 시도했으나 그 역시 망했고, 측량기사도 해봤지만 그 또한 오래 할 수가 없었다. 몸이 허약하고 열등감이 많았던 그는, 마침내 살길을 찾아 독학을 통해 문법과 수학등을 공부했고, 법학을 파고들어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다.
그가 간신히 변호사가 된 것은 스물 여덟 살때였다.
변호사로 자리잡고 나서 신념에 따라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아무것도 미리 준비한 바 없었던 그에게 닥친 결과는 당연히 낙선이었다. 그는 재도전해 간신히 하원의원이 되긴 했으나 재선엔 역시 또 실패했다. 신경쇠약을 앓기도 했다.
결혼해서 네명의 아들을 얻었는데 큰 아들을 제외한 세명의 아들은 모두 어른이 되기 전에 죽었다.
부인 역시 신경쇠약을 앓았으며 끝내 정신이상 판정을 받았다.
상원의원에 출마해서 낙선했고 다시 출마해서 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그 역시 실패했다. 언론은 평생 그를 가만두지 않고 온갖 악의적인 기사로 괴롭혔다.
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의 나이 쉰한 살때다. 대통령에 당선한 뒤 민주주의에 대한 불굴의 신념을 밝힌 감동적이고
위대한 연설을 했으나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언론은 연일 그를 매도했고 남부의 여러주는 그를 반대해 연방탈퇴를 선연하며 남부 연합으로 독립했다.
국민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외로운 대통령이었고 그의 나이 쉰여섯살 때 한 극장에서 저격범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그에 대한 모든 전설적인 평가는 그가 죽고 나서 생긴것이었다.
짐작했겠지만 이는 오늘날 인류가 “위대한 해방자”로 추앙해 마지 않는 미국의 링컨대통령 생애를 요약한 것이다.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만을 빼고 그의 생애를 보면 불행의 연속이다.
끔찍할 정도다. 이렇게 불행한 인생을 어떻게 견뎠는가 싶다.
하기야 어찌 그의 인생만이 그랬겠는가? 위대한 삶이었다고 후대로부터 추앙받는 많은 이들의 생애가 대부분 이렇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고, 베토벤이 그랬고, 헬렌켈러가 그랬고 이순신장군이나 김구선생도 그랬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선생도 살아생전에 편안한 잠자리 한번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이 독점하고 있던 지도를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는 한 가지 일념으로 지도를 만들어 나갔다.
사는게 힘들다고 느낄 때 나는 자주 “끔찍할만큼 불행했던 사람들”의 위대한 생애를 읽어본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고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역사속에서 살고 있고 내가 또한 얼마나 훌륭한 조국에서 살고 있는지 그들이 충분히 환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가진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면 당연히 행복할 수 없고, 행복하지 않다면 당연히 세상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없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사람들도 위대하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은 자신의 꿈이 옳다고 일관되게 믿고서 그로써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그 “끔찍한 생애”를 정면으로 헤쳐나갔다는 것이다.
명사에세이 - 박범신<소설가, 명지대 교수>
- 포스코 신문(200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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