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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알아가기_독도의 영토 지리(3/9)

by 서울나그네 2015. 3. 27.

 

1900년 대한제국 정부는 지방 행정 제도를 개편하면서 울릉도와 죽도, 독도를 묶어 하나의 ‘군’, 즉 울도군을 만들었다. 울릉도에 ‘군수’를 상주시켜 울릉도와 독도의 수호와 행정 관리를 강화였으며, 이를『관보(官保)』를 통해 세계에 공표하였다. 이는 서양 국제법체제로서도 한국 영토로 재선포된 것이다.

 

관보의 1900년 10월 25일자 칙령 제41호(전문 6조)「울릉도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의 2조에 따르면,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할 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석도란 독도를 말한다. 당시 울릉도에는 다수의 남해안 어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독도를 바위섬이란 뜻의 ‘독섬’이라고 불렀다. 남해안 사투리로 ‘독’은 ‘돌(石)’을 의미하며, ‘독섬’을 한자로 의역하면 ‘석도’, 음역하면 ‘독도’가 된다.

 

또한 1946년 1월 국제법 기관인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판정하여 거듭 한국 영토임이 확인되었다.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라고 판정한 근거의 기원은 멀리 카이로 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로 선언에서 연합국은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패전 후 일본영토의 한계를 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독도는 1894년 이후 “일본이 참욕과 폭력에 의하여 약취한 것”에 해당된다. 연합국은 일본으로부터 분리하여 원래 소속으로 반환해야할 영토를 규정한 연합군최고사령부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한다. 제677호 제 3항에는 일본으로 귀속될 섬과 제외될 섬을 명기하고 있다. 당연히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에 귀속되지 않고 한국영토로 발표되었다. 또한 만일 이를 수정할 때에는 “별도의 특정한 지령을 발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이 지령은 미래까지 유효하다”고 선언하였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지정한 비행정보구역(FIR, Flight Information Region) 설정에서도 독도 상공은 당연히 인천비행정보구역(Incheon FIR)에 포함되고 있고, 일본은 후쿠오카 비행정보구역, 북한은 평양 정보구역으로 규정되어 있다. 또한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에서도 일본 열도와 동해의 일본측 해역이 포함되고 있다. 물론 독도는 한국령으로 일본이 제외하고 있다. 군사적 영토 인식에서도 미국과 일본 모두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울릉도의 영유국가가 독도를 영유하는 것은 지리적으로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기 때문인데, 이는 많은 고문서에서 확인이 가능하다.『세종실록』「지리지」(1432년)에는 울릉도를 ‘본도’라 하고 독도의 당시 명칭인 우산도를 울릉도의 ‘속도’라고 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인식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관습에 ‘송죽(松竹)’은 항상 붙어 다니는 한 쌍으로 간주한다. 그렇기에 울릉도를 ‘죽도’로, 독도를 ‘송도’로 불렀던 것이다.

 

무엇보다 두 섬에서 목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 해주는 중요한 사실이다.『세종실록』에는 “우산 무릉 2도 재현정동해중 2도상거불원 풍일청명 즉가망견 신라시칭우산국(于山 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稱于山國)”이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날씨가 청명할 때 두 섬에서 서로 볼 수 있다는 기록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어민과 울릉도 주민의 어로생활권역으로서 울릉도와 독도는 모섬과 자섬이라는 지리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물론 심지어 일본의 역사기록과 공식적인 문서조차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표기한 사례를 여러 문헌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최초의 기록은『삼국사기』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512년 기사로, 지증왕 13년 6월에 우산국이 귀복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의 자료로는 1877년(明治 10년) 3월 20일 조,「태정관 지령문서」에 ‘품의한 취지의 다케시마(울릉도) 외 일도(독도) 지적 편찬의 건에 대하여 본방(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심득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어 당시 일본도 독도가 한국의 땅이라는 것을 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국가에서 제작한 고지도들은 당시의 영토인식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다. 독도가 공식적으로 지도상에 표기된 현전하는 최초의 지도는 조선 전기 지리서의 하나인『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1530)이다. 이 지도에는 독도가 정 위치가 아닌 울릉도의 서쪽에 그려져 있다. 이는 당시에 본토에서 울릉도에 갈 때 해류의 영향으로 독도에 먼저 도달하고 울릉도로 갔기 때문에 독도를 더 가깝게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왕반의 천하여지도를 바탕으로 1603~1650년경 조선에서 수정하여 새로 제작한「조선본 동아시아 지도」(17세기 초)의 한반도 부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명확히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는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중이다. 1785년의「삼국접양지도」는 일본의 하야시 시헤이(1738~1793, 일본 실학파의 최고 학자)가 그린 지도로서, 국경과 영토를 명료하게 구분하여 채색을 한 지도이다. 독도는 조선의 색채인 황색으로 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것이란 표기까지 하였다. 1855년 김대건 신부의 지도를 지리학자 말트 브룅(Malte-Brun)이 축소하여『파리지리학회지』(1855)에 게재한 지도에도 울릉도는 ‘Oulamgto’, 독도는 ‘Ousan’이라고 역시 정확히 표기가 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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