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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땅 증거-「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 기록

by 서울나그네 2014. 10. 28.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 기록에서 본 독도의 증거

 

"독도는 우리땅" 이 아니라 "독도는 한국땅" 입니다.

 

1869년 12월 도쿄에서 출발한 사다 일행은 나가사키와 대마도를 거쳐 2월 22일에 부산에 도착해서, 초량의 왜관에 머물며 정탐을 하고 3월에 귀국하였다. 외무성은 사다 등이 조선을 정탐한 결과를 보고했는데, 이 보고서가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이다. 

 

一.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
此儀松島ハ竹島ノ隣島ニチ松島ノ儀ニ付是迄揭載セシ書留モ無之. 竹島ノ儀ニ付テハ元祿度後ハ暫クノ間朝鮮ヨリ居留ノ爲差遣シ置候處當時ハ以前ノ如ク無人ト相成竹木又ハ竹ヨリ太キ葭ヲ産シ人參等自然ニ生シ其餘漁産モ相應ニ有之趣相聞ヘ候事.
右ハ朝鮮事情實地偵索イタシ候大略書面ノ通リニ御座候間一ト先歸府仕候依之件々取調書類繪圖面トモ相添此段申上候以上.

-.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부속으로 된 시말
"독도는 울릉도와 이웃한 섬으로 독도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남아 있는 서류가 없다. 울릉도 건에 대해서는 겐로쿠(1688~1704년,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집권했던 시기) 연간 이후 잠시 조선에서 거류를 위해 사람을 보낸 바 있다. 당시에는 이전과 같이 사람이 없었다. 대나무 또는 대나무보다 큰 갈대가 자라고, 인삼 등이 자연적으로 자란다. 그밖에 해산물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가운데 울릉도와 독도부분
외무성 조사부, 1938.9 ,『대일본제국외교문서』 제2권 제3책, pp131~138

 

자료출처: http://www.tokdo.kr/detail.php?number=991&thread=11r03r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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